PuSh Festival: 할머니의 시간, 나의 시간

PuSh Festival
Jaha Koo. Photo by Leontien Paula Allemeersch.

지난 1월, 밴쿠버 Round House에서 Jaha Koo작가의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 ‘The History of Korean Western Theatre’는 한국의 어두운 근대사가 미래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질문하는 작품이었다. Jaha Koo는 이전에도 제국주의로 인한 강제 근대화와, 그 과정에서 문화적으로 상실된 것들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볼 때, 한국의 일제강점기 역사와 문화적 상실은 그의 지속적인 관심사이자 주요한 창작 모티브로 보인다. 무대에는 실질적인 등장인물로 Jaha Koo 한 사람만이 실질적인 등장인물로 출연했고, 말하는 전기밥솥 ‘쿠쿠’, 로봇 개구리, 한국 토속 요괴 ‘비비새’는 각각 장치적 요소들로 활용되어 그와의 대화를 통해 연극을 전개해 나갔다.

할머니의 기억, 당시 여성들의 위치

작품에서 가장 어두운 역사를 상징하는 것은 작가의 할머니였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짧은 기간에 큰 변화들을 겪은 만큼, 당시의 여성으로서 또는 한국 국민으로서 괴로운 기억들이 많았을 것이다. 작가가 어릴 적 할머니와 지냈던 소중한 추억을 회상함과 동시에, 차라리 할머니가 괴로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억을 모두 잊었으면 하는 작가의 마음이 공감이 되었다.

옛날엔 워낙 한국이 힘들었을 시기였기에, 누구나 고된 삶을 살았겠지만, 특히 할머니를 보면 성별 때문에 더 많은 제약을 받고,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했던 세대가 눈 앞에 있다는 걸 가끔씩 느끼곤 한다. 공연 속 작가의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나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할머니가 어린 시절, 어른들의 부당한 말을 듣고 억울한 마음에 큰 소리를 냈다가, “여자애가 말대꾸를 한다”며 맞았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꼭 나랑 단 둘이 있을 때만 그런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줬다.

길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나는 항상 당황하곤 했다. 내가 살아온 모습과 너무 달라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 얘기를 꺼내는 할머니와 이야기의 내용이 묘하게 대비되어 한동안 멍해지기도 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서러움이었던 시절이다. 학업이든 뭐든 본인의 선택보다는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의무들이 먼저였고, 본인만의 삶을 추구하려 하면 염치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시대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비비새, 그리고 세대마다 다르게 겪은 역사적 경험

Jaha Koo에게는 할머니가 가장 지혜를 준 인물이고, 극 중 등장하는 비비새는 할머니의 기억을 다 먹어 치워 다음 세대를 위한 씨를 뿌리는 요괴이다. 상처와 지혜 구분하지 않고 모두 삼켜, 다음 세대를 위한 자양분으로 재구성한다. 역사신화적으로 비비새는 원래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신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여신이 괴물로 변질되었다는 점은, 나이가 들며 사회적으로 목소리가 작아지고 주변화되는 할머니(늙은 여성)와 비비새를 사이의 공통점을 보여주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비비새의 “너의 할머니의 안 좋은 기억까지 다 씹어 먹어버리면 좋은 것 아니냐”는 대사에서는, 지난 역사를 어떻게 다루고 어떤 기억을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작가가 평소에 품어온 고뇌가 느껴진다.

한국은 매 세대마다 너무 다른 역사를 겪어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는 유년기에 전쟁과 식민지배를 겪으며 생존과 안정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고, 부모님 세대에는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 운동, IMF위기를 겪으며 안정적인 가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다. 반면 나를 포함한 21세기의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K-pop과 K-Drama의 부상으로 인해 시야가 좀 더 세계로 넓어졌다. 하지만 경기침체, 펜데믹, 그리고 AI를 포함한 빠른 과학기술의 발전 등 무엇 하나 보장된 것 없어 스스로의 길을 끊임없이 개척해야 하는 세대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을 두번이나 겪은 만큼, 국가정치에 대한 경계심과 동시에 ‘부당한 권력에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긴장감 있고 리드미컬한 음악배경과 함께 비비새가 등장하기 때문에, 과거가 우리에게, 또는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불확실함 자체를 전달하는 느낌도 들었다. 워낙 긴박하게 흘러간 역사이다 보니 비비새가 소화시키기에 급급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각 세대의 역사적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기억과 삶의 방식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비비새가 이 다양한 기억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처럼 느껴진다.

근대사를 거친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현재 한국의 문화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전환점이자 시작은 바로 이 시기였다. 이 시기가 결과적으로 한국의 산업기반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심은, 그것은 “한국을 위한 발전”이 아니라, 철저한 식민 지배의 효율성을 위한 강제 근대화였다는 것이다. 일본은 강압적인 일본의 통치에 거세게 저항하는 조선 사람들을 보고, 고유 문화와 민족 정체성을 억압함으로써 조금 더 효율적인 통치(이른바 민족말살정책)를 시도한다. 학교에서는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일본어 교육이 강제되었으며, 한국 문화 관련 서적과 민속 자료들은 대거 폐기되었다. 실제로 독립 후에도 한국인들이 구사하는 문장의 절반이 일본어였고, 현 시대까지도 젊은 세대들이 일본어인 줄 모르고 쓰는 용어들이 종종 있다. 일본의 발전을 위한 도구 및 발판으로 쓰여진 시기였기 때문에, 한국 자체의 시간은 멈춰져 있던 셈이다. 이번 Jaha Koo의 퍼포먼스는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한 한국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전통극 문화에는 판소리, 탈춤 등 권력층을 풍자하는 콘텐츠가 즐겨 사용되었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를 가진 전통적인 흥 문화가 현대 사회의 K-Pop 문화와 만나면서, 집단적이고 행동적인 대중문화와 결합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는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이 음악과 춤을 즐기는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위에서는 음악과 춤이 함께 어우러져 활기찬 분위기가 연출되었었다. 특히 이번 前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시위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K-Pop 응원봉을 들고 참여하였으며,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함께 시위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거나, ‘대나무 숲’과 같은 익명 커뮤니티(주로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공간)에서는 시위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참여를 도모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항상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일들을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힘을 기르고 단결한다. 중간에 배신을 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강하게 독립의지를 알리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독립운동의 투쟁역사를 담아낸 다양한 미디어들이,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의식과 행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공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이 공연은,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후대에 남겨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와 잇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일부 장면과 대사, 작가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여성들―특히 어린 여성이나 나이 든 여성―의 목소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공연이 나에게 남긴 또 한 가지는,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대한 성찰이었다. 나는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꽤 많은 일본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낸다.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일제강점기의 역사 앞에서는 마음 깊이 분노와 아픔을 느낀다. 그런 나 자신을 보며, ‘역사’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암울한 역사와 왜, 그리고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이웃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직접 겪지 않은 과거의 일을 현재를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적 갈등 이슈가 터질 때마다 국가 간의 감정은 여전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는 때때로 국가 간 관계도 결국 인간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낀다. 큰 차이점이 있다면, 국가의 이익과 생존이라는 민감한 요소들이 얽혀 있다는 점에서 더 복잡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섣부르게 답을 내리기보다는, 역사적 갈등 속에서 개인으로서 어떤 시선과 책임감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순된 감정 속에서 흔들리더라도, 그 고민의 과정 자체가 역사를 기억하고 만들어가는 세대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 아닐까. 그래서 Jaha Koo의 그 여정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은 나에게 더욱 뜻깊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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