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특이한 억양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릴 때에는 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미 어딘가 ‘다른’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에 문의해야 하거나, 메뉴판에 따로 사진이 없는 식당에 갔을 경우에는 중국어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어른스럽고 듬직한 딸이었고 부모님도 저를 의지하시곤 했습니다.
영어를 사용할 때는 좀 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대한 어휘력을 가진 독서광이자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고, 재치 있는 농담이나 ‘요즘 애들이 하는 말’도 곧잘 쓰곤 했습니다. 저의 제한적인 중국어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모든 면에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영어가 저를 전부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연소로 CBC 시문학상을 수상한 애보츠퍼드 출신 Kyo Lee는 CBC Books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구사하는 언어에 따라 성격이 조금씩 달라진다. 스스로도 꽤 자주 그렇게 느끼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수상작에서는 사랑에 대한 탐구, 그리고 사회에서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녀 자신의 방식 사이의 단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과 식민주의의 폭력적인 이미지를 통해, 한국어로 표현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자신이 퀴어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서 경험하고 이해하는 사랑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차이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번역으로는 완전히 해석하기 힘든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경험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게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Lowhi 또한 비슷한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제이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열린 북미의 중국어 음악 시장 가능성에 관한 패널 토론에서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며, 중국어를 쓸 때가 더 예의 바르게 들린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예술가로서 저는,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불안감이 가장 큰 강점이 된다고 생각해요”라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문화 배경의 사람들은 종종 ‘코드 스위칭(Code Switching)’이라는 것을 합니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대화할 때는 격식을 갖추고 문법적으로 정확한 말을 사용하는 반면, 친구들과의 자리에서는 슬랭이나 다양한 언어를 섞어 사용합니다. 이는 우리 정체성의 일부를 조정하여 적응하는 방식이며, 일종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CBC의 North by Northwest에서 Margaret Gallagher와의 인터뷰에서 Kyo Lee는 상을 수상한 것이 “기존의 틀에 대한 언어적 반항이 주목받고 있다는 희망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그녀는 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녀는 치유받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현재와 미래를 직접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어는 우리의 삶과 관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구성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성격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두 배로 다르게 볼 수도 있을까요?
제가 자라온 아시아 문화에서 사랑은 말로써 잘 표현되는 주제는 아닙니다. 특히 퀴어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용어와 실제로 살아가며 겪는 경험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과 행복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표현하기 쉽지만, 부모님과 세대 간 트라우마와 대물림된 동성애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Kyo Lee가 퀴어 시인으로서 가진 정체성과, 한국에서 표현되고 학습되는 사랑의 방식이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통해 스스로에게 본인의 가치관을 납득시키기란 꽤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언어의 의미나 사회의 모습을 낱낱이 풀어헤친 후, 다시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자신보다 먼저 존재했음을 이해하는 것 또한 우리가 겪는 어려움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모님 또는 그 윗세대들이 기존의 언어나 가치관에 대해 더 잘 공감하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올바른 동사를 활용하거나 적절한 높임말을 쓰기 위해 깊이 고민하곤 합니다. 마치 타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에 대해 지나치게 의아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언어 역시 당신의 일부이기에, 당신은 그것을 통해 생각을 표현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Kyo Lee는 자신의 시가 “배타적이고 제한된 사랑의 정의에서 벗어나, 언어와 역사를 넘어선 개인적인 감정으로 재정의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문장, 새로운 의미, 새로운 정의를 조합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이중 언어가 가지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때로는 그 언어의 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형성한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넘어, 사랑은 언제나 끝없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Kyo Lee는 퀴어 한국계 캐나다인 고등학생으로, 작가이자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CBC 시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했습니다. 수상작인 ‘lotus flower blooming into breasts’는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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