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다른 애들이 먹는 걸로 점심 싸주면 안 돼?”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 대사가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며 깊은 감정의 여운을 남깁니다. 동현의 어머니 소영의 알겠다는 흔쾌한 대답이 얼굴에 드리운 슬픔과 대조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제 유년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저도 8살 때 같은 요청을 어머니에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의 표정도 영화 속 소영과 비슷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캐나다로 이민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이고, 희망으로 가득 찬 시작이며, 더 나은 삶을 향한 발걸음입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한 나라에서 쌓아온 대부분의 것들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도 됩니다. 이 영화에서 소영과 아들 동현은 한국에 그다지 많은 연결점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민은 어쩌면 이제까지의 삶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나라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영화는 감독의 실제 경험, 그리고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감독 앤서니 심(Anthony Shim)은 그의 어린 시절을 코퀴틀람에서 보냈고, 그 곳에서 한국 커뮤니티가 조금씩, 꾸준히 형성되어 갔습니다. 영화 속 아들 동현이 자신과 다르게 생긴 친구들 사이에서 새로운 언어와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이 참으로 사실적이며,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저 역시 어린 나이에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등장인물들의 적응과정에 참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함께 앉아 영어 이름 리스트를 보며 새 이름을 선택해야 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만, 그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저는 제 자신의 일부를 저 멀리 묶어 던져 내버려 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이 낯선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기꺼이 포기한 것들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요?
새 환경에 융화되기 위한 첫 걸음은, 자신의 정체성을 본인에게는 낯설지만 선생님들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항상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심 감독은 아시아 이민자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최대한 빨리 현지의 삶에 적응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검은 머리와 갈색 눈 때문에 언제나 외국인으로 인식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자신의 한국식 억양이 섞인 영어를 쉽게 고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녀들만큼은 라디오에 나오는 유창한 원어민들처럼 영어를 쓸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추가로 심 감독은 Pancouver와의 인터뷰에서 “이민자 부모들은 ‘나는 절대 완벽한 캐내디언 부모가 될 수 없고,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한다.”라고 말합니다.
이 영화는 심 감독이 그의 어머니에게, 그리고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모든 이민자 부모들에게 헌정한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님의 희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작품에서 어린 동현이 집 복도를 돌아다니는 동안, 소영은 그의 주위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청소년 동현이 침대에 뻗어 자고 있고, 그 옆에서 소영은 아들의 방을 치웁니다. 이런 장면들에서 우리는 철없던 어린 시절을 떠올림과 동시에, 부지런하게 자식을 돌보는 엄마의 꿋꿋하고 강한 모습이 자식의 천진함과 대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아시아계 캐나다 여성으로서 소영이 ‘아시안 여성이 가진 온순함’과 같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직장에서 백인 남성 중 한 명이 그녀의 엉덩이를 때렸을 때,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자 그녀는 스스로 그 상황을 해결합니다. 또 그녀는 동현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 다른 아이들을 때렸던 일로 교장과 면담을 할 때도 그의 부당한 대처에 분노하며 물러서지 않습니다. 어색한 영어를 사용하는 그녀에게 교장은 순순히 자신의 정학 처분에 동의하기를 바랐을지 모르지만, 그럴 때도 소영은 단호하게 맞섭니다. 아마 그녀는 먼 나라에서 온 이민자 가정의 싱글맘인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가 자신과 아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심 감독이 한국 여성을 정당하고 솔직하게 묘사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심 감독은 “북미 사람들이 한국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가 이민자의 고통과 상처로 가득한 이야기라 보기 껄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Rice boy Sleeps는 다른 언어로 간단하게 옮길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과 슬픔을 전달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티며 나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균형 있게 담아냅니다.
특히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과 새롭게 ‘캐나다인’으로서 적응하는 것 사이의 갈등을 잘 보여줍니다. 청소년 동현이 처음 등장할 때, 그는 금발로 염색하고 푸른 색의 컬러 렌즈를 끼고 있지만 어머니와는 영어와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섞어 대화합니다.

언어와 음식, 그리고 관습 등에서의 이중성은 이민자들이 매일 겪는 갈등입니다. 물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롭게 뿌리내릴 수야 있지만, 적응하기 위해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소영이 동현에게 영어 이름을 만드는 것을 권하면서도, 꼭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장면을 트레일러에서 처음 봤을 때 목이 메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내 비영어권 이름은 여전히 법적 이름으로 남아 있지만, 이젠 내 가족들조차도 더 이상 그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소영은 아들을 영어 이름으로 부르지만, 집에서만큼은 한국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는 그녀만의 방식일 수 있고, 그렇기에 자신의 영어 이름도 만들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은 것은, 새로운 캐나다인으로서의 삶을 적응해가는 고된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따뜻함과 사랑을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샌드위치를 한 번도 감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게 꼭 샌드위치라서는 아닙니다. 아시아 권이 아닌 친구들이 점심으로 싸 온 볶음밥과 만두를 자랑할 때조차도 저는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식빵과 햄, 그리고 슬라이스 치즈가 녹아 붙어있는 샌드위치를 억지로 삼키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여기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제 나름의 노력이었습니다.
Rice boy Sleeps는 인종차별을 이겨내는 대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영화도 아닙니다. 심 감독이 직접 말한 바에 따르면, 이 영화는 “집을 찾는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집’이란 물리적인 장소 이상을 말하며, 정체성은 런치박스처럼 본인 마음대로 구성해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를 하나 남기고 싶습니다.
힘겹게 산을 오르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묻습니다. “다시 돌아갈까?”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안돼, 그래도 계속 가야지.”
원본 기사 읽기 >> 이 링크 클릭


